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
과거의 기억에만 사로잡혀 대결을 조장하고 분열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거다.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앞으로 나가자는 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 과거 시점에 '피해자'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이지
결코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가해자'가 사죄와 반성을 하고
그 후에 '피해자'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는 부류들은 대개 '가해자'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다.
일본의 우익들이 그러했고,
해방 후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을 형성했던 친일파들이 그러했다.
인간적 매력과 '옳고 그름'은 다르다.
'하얀 거탑'을 매주 챙겨보았지만,
사실 '하얀 거탑'은 내게 불편한 드라마다.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결함'을 보여주고
나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
선악의 구도를 혼란스럽게 하는 드라마.
물론 세상에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다는 것쯤은 안다.
선이면서 악이고, 악이면서 선인 그런 것들이 세상의 대부분이다.
선악 대립구도가 뚜렷한 영화나 드라마처럼 밍숭맹숭한 게 어디 있겠나.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고, 선한 역이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캐릭터들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라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소문난 칠공주'가 그랬다.
'도덕적 결함'을 너무나 강조한 '미칠'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그가 내뱉는 '옳은 주장'까지도 도매급으로 비난받아야 했던 최악의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그 대척점에 있다.
모든 배경 지식을 배제하고, 사실 관계만 보자.
그는 자신의 명예와 출세를 위해 가난한 환자를 죽였고, 부하직원을 억압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그 집착이란..
그의 그 오만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악몽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인간적 매력'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만다.
불편하다. 이런 기분은..
정말이지 이런 기분은 불편하다.
장준혁에게서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장준혁에게 '면죄부'를 주어선 곤란하다.
미칠의 '싸가지 없음'에 분노를 느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그녀의 모든 말에 '마녀의 낙인'을 찍는 것은 곤란하다.
화해? 용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화해와 용서인가.
그것은 '피해자'의 권리이지 '가해자'의 권리가 아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억울한 '피해자'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존재한다.
이미 기득권에 있는 당신들이 어떻게 '화해와 용서'를 운운하나.
이렇게 비겁한 방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나.
옳지 않다.
불쾌하다.
| 뉴스 :'하얀거탑'이 주는 교훈은? …'화해와 용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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